글 작성자: 택시 운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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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탠리 패러블

The Stanley Parable

메타 스코어 평점 88

2013.10.17 스팀 발매

정가 ₩16,000

Team FELT 한글화


 '게임'이란 무엇인가? 다양한 전문가들이 게임이란 용어를 제대로 정의하기위해 노력했다. 나는 그 중 세계 3대 개발자 중 한 명이자 악마의 게임으로 불리우는 <시드 마이어 문명 >시리즈의 개발자인 시드 마이어의 정의를 좋아한다.

게임이란, 의미있는 선택의 연속이다
-  시드 마이어  -

게이머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게임에 대한 짧고 간결한 정의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에 반기를 든 게임이 하나 있다. 바로 오늘 소개할 게임인 <더 스탠리 패러블>이다.

" 누가 내 정의에 반기를 들었다고? "

스토리 - 스탠리는...

스탠리는 컴퓨터로 지시가 내려오면 키보드 키를 누르면 되는 단순 반복적인 일을 하던 도중, 상부에서 지시가 오지 않음을 알고 불안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스탠리를 조작하고, 배경을 설명하던 나레이터는 스탠리가 해야 할 행동을 알려줍니다. 직선적 구조의 스토리에 적응된 사람들이라면 바로 나레이션이 하는 말을 듣게 된다. 그러던 중 의문을 갖는다. 매 순간마다 나레이션의 명령은 하나지만 스탠리가 선택 할 수 있는 선택지는 언제나 2개 이상인 것이다. 플레이어는 이 순간 고민한다. 나레이션의 명령을 들을 것인가? 아니면 자신만의 선택을 할 것인가? 플레이어는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서있게 됩니다.

 

공장의 부품처럼 같은 일만 했던 스탠리

 

게임적 특징 - 나레이션과의 밀땅

전체적인 게임의 선택지는 단 2가지다. 나레이션의 선택을 따를 것인가? 혹은 따르지 않을 것인가? 뚜렷한 목표도 없다. 플레이어는 선택을 하고 게임은 선택에 반응하며 게임을 이어나간다. 선택의 끝에는 언제나 하나의 엔딩이 있고, 게임은 다시 스탠리의 427번 사무실에서 시작한다.

 

나레이션의 선택을 따를 것인가?

이 게임에 없는 것이 있다. 바로 목표, 플레이어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아이템을 얻고 캐릭터를 키우는 일반적인 게임의 재미가 아닌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게임의 변화에 재미를 느끼게 된다. 마치 자신이 한 소설의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목표가 있다면 모든 선택지를 다 경험해보는 것정도가 있겠지만 이 게임 자체의 목표는 아니다. 이런 재미 가운데 우리는 의문을 갖게 된다. 그럼 <더 스탠리 패러블>이 게임이라 할 수 있는가?

따르지 않을 것인가?

다시 한번 시드마이어의 게임에 대한 정의를 되새겨보자. 게임은 의미있는 선택의 연속이라 했다. " 스탠리는 왼쪽 문으로 들어갔습니다. ", " 스탠리는 빨간 문으로 들어갔습니다 " 같은 나레이션의 명령은 모든 게임에서 의미있는 선택이었다. 다른 선택은 언제다 무의미한 선택의 연속이 될 뿐이었다. 퀘스트에서 던전으로 가라면 던전으로 가야하고 다른 선택은 염두되지 않은 선택 즉 무의미한 선택인 것이다. 그러나 <더 스탠리 패러블>은 그 "무의미한 선택"들을 "의미있는 선택"으로 바꾼다. 나레이션에 대한 반항심에 문을 두드리는 것도, 청소 도구함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모두 의미있는 선택이 된다. <더 스탠리 패러블>은 게임이라는 개념의 외연을 확장시키는 게임인 것이다.

무의미한 선택이 의미있는 선택이 된다

 플레이어의 선택 가운데 나레이션은 언제나 플레이어를 속이게한다. 프로그래밍 된 플레이어의 행동에 맞춰서 맞는 스크립트가 나오는 방식이지만, 예상치 못한 스탠리의 행동에 스크립트를 뒤적이는 소리를 낸다던지 스탠리에게 화를 낸다던지하며 플레이어에게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상호작용"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예상치 못한 나레이션의 대사들은 우리의 행동을 미리 예상하여 요소 곳곳에 넣어두었다. 심지어 위에 말한 청소도구함까지, 이러한 방식은 코미디에서 주로 쓰이는데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이면서 보는 사람을 흥미롭게 만드는 수법이다. 미국의 코미디언 앤디 카우프만의 코미디가 주로 이런 식으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전혀 예상치 못한 행동 보여주면서 웃음을 주는 방식의 코미디를 한다.

Andy Kaufman's Foreign Man - Saturday Night Live

선택만 하면 끝나는 게임이라고 볼륨이 작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게임은 메인엔딩만 13개이고, 그 외에 서브엔딩까지 합하면 30개가 넘는다. 30개도 적은가? 어떤 엔딩은 클리어하는데 4시간이 걸린다. 각 엔딩마다 각자의 스토리가 있으며 그 사이에 벌어지는 나레이션과 플레이어간의 신경전은 또 다른 재미거리이다. 플레이어는 선택의 과정에서 자신의 선택에 점점 고민하게 된다.

공간 엔딩에서 나레이션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스탠리에게 남은 선택은 4층 높이에서 계속 떨어지는 것 뿐이다
< 더 스탠리 패러블 >의 엔딩루트들

데모 - 적절한 프리퀄

<더 스탠리 패러블>의 진정한 묘미는 데모버전에 있다. 데모버전이라는 네이밍에 게임의 앞부분만 보여준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데모는 완전 다른 스토리의 게임으로 본편의 맛보기라기보단 본편의 프리퀄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볼륨도 30분정도 분량으로 데모치고는 휼륭하다.

 

더 스탠리 패러블 데모 다운로드

 

갑시다! 데모로!

결론 - 그래서 게임이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게임"은 맞는 것일까? 게임이란 용어의 원론까지 의문갖게 만드는 작품이다. 예술에 있어서 '물음표'라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게임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이는 영화라는 종합 예술장르를 넘어서 상호작용까지 더한 게임이 진정한 종합 예술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게임에 대한 정의는 확실히 정해지지 않았다. 호기심은 관심의 시발점이다. 요즘의 게임들은 재미에만 치중하고 게임 그 자체에는 의문을 갖지 않는 게임들로 넘쳐난다. 그런 게임계에 <더 스탠리 패러블>은 게임의 정의를 확장하고 비꼬면서 "게임"이라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마치 르네 마그리트가 진실성과 사실적 묘사만을 강조하던 기존 미술계의 관습들을 <이미지의 배반>으로 부드럽게 비꼰 것 처럼 말이다.

르네 마그리트는 평범할 수도 있는 그림에 문장 하나를 붙여서 '호기심'을 갖게 했다

다시 <더 스텐리 패러블> 게임의 타이틀로 와보자. 타이틀에는 <You are playing THE STANLEY PARABLE>이라 써있고, 컴퓨터엔 게임화면이 그 컴퓨터안의 컴퓨터에도 똑같은 화면이 놓여져있다. "당신은 더 스탠리 패러블을 플레이하고 있습니다"라고 써놓았지만, 진짜 "플레이" 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것이 진짜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진짜 '플레이'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것을 진짜 '게임'이라고 할 수 있을까?

" 스탠리는 이 게임이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다양한 엔딩이 있는 것이 꽤나 재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말로요, 그래서 그는 스크롤을 올려서 리뷰를 지나, 장바구니에 추가 버튼을 눌렀습니다. "

" 오, 아마 잘 못 이해했나보군요, 스탠리는 장바구니에 추가 버튼을 눌렀습니다. "

" 스탠리는 장바구니에 추가 버튼을 눌렀습니다. "

" 지금 듣고 있는 거 맞나요? 스.탠.리.는.장.바.구.니.에.추.가.버.튼.을.눌.렀.습.니.다. "

" 괜찮아요 스탠리, 맘데로 하세요, 그러나 당신은 내 말을 들어야할 거에요. 내가 지금 당신을 속이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내가 왜 그런 짓을 해야 하는거죠? 제가 당신이 돈 낭비하는 것을 원한다고 확신하는 건가요? 스탠리, 저는 진지하다고요, 

이 게임은 멋져요. 그러니까 제발, 스크롤 올려서 장바구니에 추가버튼을 눌러요. 당신이 이 게임을 좋아하길 바래요 "

 

-  FourthRhyme의 스팀 리뷰 번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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